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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주권, 그렇다면...” (2011년 3월 27일)
201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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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주권,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만물에는 계절이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입니다.  사시사철 무더운 열대 지방에도, 일년내내 혹한의 양극 지방에도  미미하지만 사계절은 존재한다고 합니다.  언뜻 계절의 변화가 그리 뚜렷하지 않은 듯 한 남가주도 사계절이 존재합니다.  이 남가주에도 서서히 봄이 찾아 오는 것 같습니다.  며칠동안 하늘이 구름을 잔뜩 머물고 비를 흩날려 주더니 프리웨이 양편에 솟아있는 언덕마다 배시시 푸른색을 뛴 풀들이 촘촘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분 부분 눈부신 노란색 유채꽃이 꽃망울을 터뜨린 곳도 있습니다.  알록달록 꽃망울 너머 흰눈이 덮여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얀 산봉우리들은 봄을 시샘하는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인양 안타까운 자태를 뽐낼 뿐입니다. TV영상에 비친 고국 한국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꽃샘추위니 뭐니 해서 3월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지만 함박눈을 머금은 벚꽃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접합니다.  길을 오가는 시민들이 한껏 코트깃을 세우고 종종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길가의 가로수는 파란옷을 입고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곧 터질 듯 힘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서슬 시퍼런 동장군이 봄기운에 힘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몸을 으슬으슬하게 만들며 마음마저 시리도록 만들었던 겨울의 힘이 언제 물러가나 싶은데 봄은 이렇게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계절은 각기 다릅니다.  만물이 약진하는 봄기운을 좋아한다고 일년 열두달 봄의 기운을 사람이 잡아둘 수는 없습니다.  첨단 과학을 응용한다고 봄으로 장식된 일년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름이나, 가을, 겨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계절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계절의 변화에 사람이 변수가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는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부슬 부슬 내리는 겨울비에 지쳐 우울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 겨울은 가라고 외쳐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계절의 순리를 우리가 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계절을 물리치고 싶다고 좋아하는 계절에 맞는 옷을 미리 챙겨입는다 한들 계절의 변화에 사람이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접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음이 사실입니다.  태어나면서 내 취향에 맞는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출생지를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성별도 선택할 수 업습니다.  성격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선택의 폭은 조금씩 늘어가는 듯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겪어보면 제한적입니다.  원한다고 취향을 고려한다고 마음대로 선택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죽음의 시각 마저도도 내 마음대로 취사선택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호는 인생 전반을 통해서 철저하게 무시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봄을 선호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봄을 몰아다 주십니다.  아무리 겨울의 힘이 강력하다 한들 하나님이 데려다 주시는 봄을 겨울은 끝까지 거부할 수 없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핵심은 우리가 선호하는 것을 얻는 것 마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바심내고 힘들어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상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취향과 선호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권을 행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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